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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픈 인연

  • 작성자 사진: 대재 성주
    대재 성주
  • 2023년 10월 3일
  • 1분 분량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다면

원한은 언제나 계속되나니

원한을 놓아야 풀리리라.

이것이 영원한 진리이다.

-법구경-

요즘 돌아가는 세상이 심상치 않다.

오랜 숙업(宿業)을 가진 일본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과거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당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이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런데 이 일을 군더더기 없이 간단하게 보면

그냥 서로의 입장(立場) 차이일 뿐이다.

맞은 사람 입장에서는 때렸으니 사과해라는 거고

때린 사람 입장에서는 사과할 만큼 했다는 거다.

맞은 사람 입장에서는 아직도 아프다는 거고

때린 사람 입장에서는 이제 좀 그만해라 하는 거다.

맞은 사람 입장에서는 감정이 개입되고

때린 사람 입장에서는 또 맞을래하는 것이다.

입장 차이로만 보면 양쪽 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입장 차이에도

관점(觀點)과 명분(名分)이란 게 있다.

바로 이해와 납득이다.

관점이 있기에 이해가 되고

명분이 있기에 납득이 되어야 한다.

"내 입장에선 화가 나는데

네 입장이 되어보면

이해도 된다"가 성립되어야 한다.

일제강점기 35년.

여자는 정신대로 남자는 징용으로

역사는 왜곡되고 문화는 훼손되고

이 땅에 아물 수 없는 아픔과 흔적을 남긴

일본에 어떤 입장이 있는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도리어 나무라는 것이다.

불가(佛家)에 업(業)이란 것이 있다.

내가 지은 행위에 따라 나오는 결과의 원인을

업(業)이라 하고 그 과보를 업보(業報)라 한다.

이업에는 동업(同業)과 별업(別業)이 있는데

동업은 무리가 짓는 업이고 별업을 개인이 짓는 업이다

업이 쌓이고 쌓이면 장(障)이 되는데

이미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아세아인들에게 아물지 않은 아픔과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일본은 이 동업(同業)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기회가 있을 때 참회(懺悔) 해야 할 것이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고개 숙여 사죄하는 것만이 어두운 과거로부터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며 진정한 과거청산만이 일본을 다시금 빛내는 길일 것이다.

-법구경-

지은 죄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금세 짜 낸 젖이 상하지 않듯.

재에 덮인 불씨가 꺼지지 않듯.

지은 업이 당장엔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늘에 숨어서 그를 따라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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